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거룩한 식사 / 황 지 우

푸른 언덕 2021. 1. 21. 18:34

 

 

거룩한 식사 / 황 지 우

 


나이든 남자가 혼자 밥 먹을 때
울컥, 하고 올라오는게 있다
큰 덩치로 분식집 메뉴표를 가리고서
등 돌리고 라면발 건져올리고 있는 그에게,
양푼의 식은 밥을 놓고 동생과 눈 흘기며 숟갈 싸움하던
그 어린것이 올라와,
갑자기 목메게 한 것이다

몸에 한세상 떠 넣어주는
먹는 일의 거룩함이여
이 세상 모든 찬밥에 붙은 더운 목숨이여
이 세상에서 혼자 밥 먹는 자들
풀어진 뒷머리를 보라
파고다 공원 뒤편 순댓집에서
국밥을 숟가락 가득 떠 넣으시는 노인의, 쩍 벌린 입이
나는 어찌 이리 눈물겨운가



* 황지우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주점에 앉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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