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서천 호박꽃

푸른 언덕 2020. 10. 20. 18:22


서천 호박꽃 / 박 수 봉

서천 변두리 순댓국집에 꽃이 피었다
김이 오르는 순댓국을 앞에 놓고
오가는 목소리가 붉게 익어간다

황무지 묵은 밭에 뿌리내리느라 굵어진
팔뚝이 스스럼없이 잔을 건네온다
닳아빠진 손톱에 수줍은 다섯잎이
분홍으로 피었다

거친 바닷바람 주렁주렁 매달고
흙먼지 뽀얀 벼랑 같은 삶,
백일홍 꽃잎 붉은 것을 알겠다며 하얀
이를 드러낸다

붉어진 달이 담을 넘던 날
꽃술을 더듬고 간 호박별이 있었다고
창을 열어 새파란 호박 두 덩이를 보여준다

화심 깊숙이 몸 씻고 들어앉으며
솜털까지 물들 것 같은 노란 화엄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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