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미술이야기/명화감상

해바라기 (국수리 어머님 그림)

푸른 언덕 2020. 9. 2. 21:21

해바라기

국수리 어머님의 따끈한 그림이 도착했다.

친한 동생의 어머님이시다.

연세는 여든일곱 이시다.

가난하고 강직한 공무원의

아내로 사셨는데 일찍 남편을

여의시고 2남 1녀를 홀로 키우셨다.

손재주가 뛰어나셔서

이웃들의 결혼식이 있을 때

밤, 대추로 폐백 음식을

산처럼 멋지게 쌓으셨단다.

동네 사람들 칭찬이 부끄러우셨단다.

세 자녀들의 옷을 아기 때부터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손수

만들어 입히셨다.

시장에서 천을 떠다가 눈짐작으로 신문지에

재단을 하시고 옷을 만들어 입히셨단다.

 

뜨개질도 잘하셔서 겨울에 코트를

떠서 입히셨단다. 어린 자식들 귀 시릴까 봐

모자도 손수 떠서 씌워주셨는데

앞에 챙이 나온 모자는 책받침을

오려서 넣으셨다고 한다.

평소에 땅을 놀리는 것을

죄로 여기신 어머님은

텃밭에 고추, 파, 들깨,

강낭콩, 오이, 토마토를 심으셨다.

서울 사는 자식들에게

유기농 꾸러미를 자주 보내신다.

 

그런 어머님께서 여든네 살에

뇌경색이 오셨다.

왼손에 심한 장애가 같이 왔다.

결국 오른손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을

안고 노년을 사시게 되셨다.

그깟 풀들이 모라고 아침마다

풀을 한 손으로 뽑으신다.

그런 어머니가 안쓰러워서

친한 동생은 예술 아트에서

밑그림이 스케치 되어있는

그림을 사다 드렸다.

뇌경색으로 인해 치매가 걱정이 된

딸의 고운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림이 완성된 날에 자녀들과 동네

사람들이 깜짝 놀랐단다.

한 손으로 색칠한 그림이

색감도 따뜻하고, 밝았다

어머님은 그림을 색칠하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누군가를

어렴풋이 느끼셨다.

소녀처럼 너무 행복해하신다.

밤이 늦도록 그림을 그리신다.

색채 감각이 뛰어나신 어머님께

평생 밭일만 시킨 자식들은 밀려오는

후회와 죄책감, 미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단다.

자식새끼들 학원비는 몇십만 원도

척척 갖다 받치면서 고작 만 원짜리

그림 도구를 사드리지 못했다니

저토록 아이같이 좋아하시데~~

더 일찍 사드리지 못한 것이

자신의 죄인 양 다 큰 딸은 어머니 그림 앞에서

펑펑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해바라기 그림은 첫 손녀딸

주라신다.

시집가는 날에 핑크 보자기에 곱게 싸서

선물로 주셨다.

거실에 걸어 놓으란다.

해바라기처럼 항상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살라신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란다

가까이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바라봐 주는 것이란다.

오늘도 손녀딸은 아침밥을

먹으면서 해바라기처럼

새신랑을 바라보고 씨익 웃는다.

하얀 밥알이 입안에서 긴 햇살로

온 집안에 환하게 퍼진다.

어머니 일생 닮은 해바라기

국수리 할머니 노란 일기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