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신종식
소녀 / 박소란
한쪽 눈알을 잃어버리고도 벙긋
웃는 입 모양을 한 인형
다행이다
인형이라서
오늘도 말없이 견디고 있다
소녀의 잔잔한 가슴팍에 안겨서
소녀는 울음을 쏟지 않고
아픈 자국을 보고도 놀라지 않지
슬픔은 유치원에서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갈색과 녹색처럼 헷갈리기 쉬운 것
스케치북 속 흐드러진 풍경은 갈색
철 지난 이불에 파묻혀 앓는 엄마 얼굴은 녹색 짙은 녹색
아무도 놀러 오지 않는 방
고장난 인형이 캄캄 뒤척이다 잠든 방은
어여쁜 분홍색,
좁다란 창에 묶여 휘늘어진 어둠의 리본처럼
혼자서 가만히 색칠하는 소녀
다행이다
소녀라서 이대로 잠시
빨갛게 웃을 수 있었어
박소란 시집 / 심장에 가까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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