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봄의 미안 / 이은규

푸른 언덕 2022. 5. 11. 18:58

그림 / 송태관

봄의 미안 / 이은규

 

누가

봄을 열었을까, 열어줬을까

허공에서 새어나온 분홍 한 점이 떨고 있다

바다 밑 안부가 들려오지 않고, 않고 있는데

덮어놓은 책처럼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말을 반복한다

미안未安

잘못을 저지른 내 마음이 안녕하지 못하는 말

이제 그 말을 거두기로 하자, 거두자

슬플 때 분홍색으로 몸이 변한다는 돌고래를 본 적이 있다

모든 포유류는 분홍분홍 울지도 모른다

오는 것으로 가는 봄이어서

언제나 4월은 기억투쟁 특별구간이다

그렇게 봄은 열리고 열릴 것

인간적인 한에서 이미 약을 선택한 거라고 말한다면

그때 바다에 귀 기울이자

슬픔은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그 무엇이어서

봄은 먼 분홍을 가까이에 두고 사라질 것

성급한 용서는

이미 일어난 일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만든다

오래 이어질 기억투쟁 특별구간

멀리서 가까이서 분홍분홍 들려오는 밤

덮어놓은 책은 기도와 같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오고 있을 문장은 기도가 아니라 선언이어야 할 것

봄을 닫기 전에, 닫아버리려 하기 전에

누군가

이은규 시집 /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이은규>

1978년 서울 출생

2006년 <국제신문>신춘문예 등단

2008<동아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다정한 호칭><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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