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송태관
봄의 미안 / 이은규
누가
봄을 열었을까, 열어줬을까
허공에서 새어나온 분홍 한 점이 떨고 있다
바다 밑 안부가 들려오지 않고, 않고 있는데
덮어놓은 책처럼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말을 반복한다
미안未安
잘못을 저지른 내 마음이 안녕하지 못하는 말
이제 그 말을 거두기로 하자, 거두자
슬플 때 분홍색으로 몸이 변한다는 돌고래를 본 적이 있다
모든 포유류는 분홍분홍 울지도 모른다
오는 것으로 가는 봄이어서
언제나 4월은 기억투쟁 특별구간이다
그렇게 봄은 열리고 열릴 것
인간적인 한에서 이미 약을 선택한 거라고 말한다면
그때 바다에 귀 기울이자
슬픔은 날마다 새로 태어나는 그 무엇이어서
봄은 먼 분홍을 가까이에 두고 사라질 것
성급한 용서는
이미 일어난 일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로 만든다
오래 이어질 기억투쟁 특별구간
멀리서 가까이서 분홍분홍 들려오는 밤
덮어놓은 책은 기도와 같다는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오고 있을 문장은 기도가 아니라 선언이어야 할 것
봄을 닫기 전에, 닫아버리려 하기 전에
누군가
이은규 시집 / 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이은규>
1978년 서울 출생
2006년 <국제신문>신춘문예 등단
2008<동아일보>신춘문예 등단
시집<다정한 호칭><오래 속삭여도 좋을 이야기>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별 Der Abschied / 괴테 (0) | 2022.05.13 |
---|---|
소금 성자 / 정일근 (0) | 2022.05.12 |
물의 뺨을 쳤다 / 정일근 (0) | 2022.05.10 |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 박제영 (0) | 2022.05.09 |
진화론을 읽는 밤 / 나호열 (0) | 2022.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