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 보 석
무령왕비의 은팔찌 < 다리多利의 말> / 문 효 치
왕비여 여인이여
내가 그대를 사모하건만
그대는 너무 멀리 계십니다
같은 이승이라지만
우리 사이에는 까마득히 넓은 강이 흐릅니다
그대를 향하여 사위어가는 정한 목숨
내가 만드는 것은 한낱 팔찌가 아니라
그대에게 달려가는 내 그리움의 몸부림입니다
내가 빚은 것은 한낱 용의 형상이 아니라
그대에게 건너가려는 내 사랑의 용틀임입니다
비늘 하나를 새겨 넣고 먼 산 보며 한숨 집니다
다시 발톱 하나 새겨 넣고
달을 보며 피울음 웁니다
내 살을 깎아 용의 살을 붙이고
내 뼈를 빼어내어 용의 뼈를 맞춥니다
왕비여, 여인이여. 그대에게 날려 보내는 용은
작은 손목에 머무르지 않고
그대 몸뚱이에 휘감길 것이며
마침내 온 몸 구석구석에 퍼져 스며들 것이며
그러다가 지쳐 쓰러지더라도
파고들 것이며, 파고들어 불탈 것이며
그리하여 저승의 내정 內庭까지도
따라 들어갈 것이며……
왕비여, 여인이여 내가 그대를 사모하는 것은
그대 이름이 높으나 높은 왕비여서가 아니라
다만 그대가 아름다워서일 뿐
눈이 시리게 아름다워서일 뿐입니다
*다리多利 : 무령왕비의 은팔찌 안쪽에는 용이 그려져있다. 다리(공예품 장인)라는 이름도 새겨져 있는데,
다리는 백제의 감성적인 장인으로 왕비를 사모해 팔찌를 통해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전하기 위해서
왕비를 휘감은 용을 새겨 넣었다. (시인의 상상일까?)
*무령왕비의 은팔찌(국보 160호) 삼국시대의 유일한 팔찌. 바깥지름 8cm, 고리지름 1.1cm
<문효치 시인 약력>
*1943년 전북 군산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고려대 (교육대학원 졸업)
*196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바람 앞에서"
*196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산색"
*한국 문인 협회 회장 (26대)
*시집<煙氣 속에 서서><武寧王의 나무새>
<백제의 달은 강물에 내려 출렁거리고>
<백제 가는 길><바다의 문><선유도를 바라보며>
<남내리 엽서>
*시선집 <백제 시집> <사랑이여 어디든 가서>
*산문집<시가 있는 길><문효치 시인의 기행시첩>
*수상 경력 / 천상병 시문학상, 김삿갓 문학상, 정지용 문학상, 옥관문화훈장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구리 구슬치기 / 장두현 (0) | 2021.10.30 |
---|---|
대결 / 이 상 국 (0) | 2021.10.29 |
찬란 / 이병률 (0) | 2021.10.27 |
가을 사랑 / 도 종 환 (0) | 2021.10.26 |
바구미를 죽이는 밤 / 문성해 (0) | 2021.10.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