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가을 / 송찬호

푸른 언덕 2021. 10. 11. 18:56

그림 / 이 규 영

 

가을 / 송찬호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 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어 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화들짝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고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말 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 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 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 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시집 /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

<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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