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칼로 사과를 먹다 / 황 인 숙

푸른 언덕 2021. 9. 23. 18:02

그림 / 권 현 숙

 

칼로 사과를 먹다 / 황 인 숙

사과 껍질의 붉은 끈이

구불구불 길어진다.

사과즙이 손끝에서

손목으로 흘러내린다.

향긋한 사과 내음이 기어든다.

나무 깎은 사과를 접시 위에서 조각낸 다음

무심히 칼끝으로

한 조각 찍어 올려 입에 넣는다.

"그러지 마. 칼로 음식을 먹으면

가슴 아픈 일을 당한대."

언니는 말했었다.

세상에는

칼로 무엇을 먹이는 사람 또한 있겠지.

(그 또한 가슴이 아프겠지)

칼로 사과를 먹으면서

언니의 말이 떠오르고

내가 칼로 무엇을 먹인 사람들이 떠오르고

아아, 그때 나,

왜 그랬을까....

나는 계속

칼로 사과를 찍어 먹는다.

(젊다는 건, 아직 가슴 아플

많은 일이 남아 있다는 건데.

그걸 아직

두려워한다는 건데.)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민음사>

 

극사실화 / 민 경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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