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빈 화분에 물주기

푸른 언덕 2020. 2. 17. 22:08

빈 화분에 물주기

                                               이근화


어디에서 날아온 씨앗일까

누가 파 온 흙일까

마시던 물을 일없이 빈 화분에 쏟아부었더니

며칠 지나 잎이 나온다

욕 같다

너 내게 물 먹였지

그러는 것 같다

미안하다 잘못했다

그러면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볕이 잘드는 곳으로 옮겨 주었다

몰라봐서 미안하다

그런데 끝까지 모르겠다

너 누구니, 아니 댁은 누구십니까

잎이 넓적하고 푸르다

꽃 같은 것도 피울 거니

그럼 정말 내게 욕하는 거야

안녕하십니까, 묻지 마 내게

당황스럽잖아 나더러 어쩌라고

계속 물을 주어야 한다

불안하면 지는 거다

그런데 더 주어야 하나 덜 주어야 하나

그늘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가

의심 하는 거다

너는 어디서 왔니

족보를 따지는 거다

상상하는 거다

너 아무것도 아니지

나의 몽상이구나

나란 망상이구나

죽고 없는 거구나

잘 살기란 온전하기란

불가능한 거구나

빈 화분에 물을 주며

나는 하루하루 시들어 간다

최선을 다해 말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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