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 이 효 그림 / 김정수 항아리 / 이 효 손길 닿지 않는 대들보에 항아리를 거신 아버지 까막눈 파지 줍는 아저씨 은행에 돈 맡길 줄 몰라 아버지께 당신을 건넨다 아버지 세상 떠나기 전 항아리 속에 꼬깃꼬깃한 돈 아저씨에게 쥐어준다 뚝뚝 떨어지는 눈물방울 긴 겨울이 꼬리 잘리고 다시 찾아온 가을 검정 비닐 들고 온 아저씨 홀로 계신 어머니께 두 손 내민다 비닐 속에는 붉게 터져버린 감이 벌겋게 들어앉아 울고 있다 이효 시집 / 당신의 숨 한 번 문학이야기/자작시 2022.12.16
구부러진 골목길 / 이 효 구부러진 골목길 / 이 효 허름한 대문 앞 붉은 화분을 보면 꽃 속에서 주인의 얼굴이 보인다 지붕 위로 엉켜진 전깃줄을 보면 어머니의 구수한 잔소리가 들린다 골목길 자전거 바퀴를 보면 동네 아낙네들 굴러가는 수다 소리가 들린다 배가 불뚝한 붉은 항아리를 보면 할아버지 큰 바가지로 막걸리 잡수시던 술배가 생각난다 구부러진 골목 안에는 이름만 부르면 뛰어나올 것 같은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멀리서 보이는 고층 아파트가 군화를 신고 달려온다. 새들이 날아가 버린 나무에 붉은 감이 울고 있다. 문학이야기/자작시 20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