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소 순 희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 경 주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內緣)을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