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 천양희 그림 / 안수미 다음 / 천양희 어떤 계절을 좋아하나요? 다음 계절 당신의 대표작은요? 다음 작품 누가 누구에게 던진 질문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봉인된 책처럼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왜 다음 생각을 못 했을까 이다음에 누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시인인 것이 무거워서 종종 다음 역을 지나친다 시집 / 새벽에 생각하다 문학이야기/명시 2022.09.01
글자를 놓친 하루 / 천양희 그림 / 자심 글자를 놓친 하루 / 천양희 어느 시인의 시집을 받고 정진하기를 바란다는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 'ㄴ'자를 빼먹고 정지하기를 바란다고 보내고 말았다 글자 한 자 놓친 것 때문에 의미가 정반대로 달라졌다 'ㄴ'자 한 자가 모자라 신(神)이 되지 못한 시처럼 정진과 정지 사이에서 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천양희 시집 / 새벽에 생각하다 문학이야기/명시 2022.08.23
마음이 깨어진다는 말 / 천양희 그림 / 최연 마음이 깨어진다는 말 / 천양희 남편이 실직으로 고개 숙인 그녀에게 엄마, 고뇌하는 거야? 다섯 살짜리 딸 아이가 느닷없이 묻는다 고뇌라는 말에 놀란 그녀가 고뇌가 뭔데? 되물었더니 마음이 깨어지는 거야, 한다 꽃잎 같은 아이의 입술 끝에서 재앙 같은 말이 나온 이 세상을 그녀는 믿을 수가 없다 책장을 넘기듯 시간을 넘기고 생각한다 깨어진 마음을 들고 어디로 가나 고뇌하는 그녀에게 아무도 아무 말 해주지 않았다 하루 종일 길모퉁이에 앉아 삶을 꿈꾸었다 천양희 시집 / 새벽에 생각하다 문학이야기/명시 2022.07.13
무소유 / 천양희 그림 / 윤영선 무소유 / 천양희 무소유로 살다 간 법정스님의 무소유란 책이 아무리 무소유를 말해도 이 책만큼은 소유하고 싶다던 김수환 추기경도 무소유로 살다 갔다 거미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거미줄을 뽑지 않는 것처럼 우리한테 가장 어려운 것은 무소유로 살다 가는 것이다 천양희 시집 / 새벽에 생각하다 문학이야기/명시 2022.07.11
실패의 힘 / 천양희 그림 / 박혜숙 실패의 힘 / 천양희 내가 살아질 때까지 아니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애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비가 그칠 때까지 철저히 혼자였으므로 나는 홀로 우월했으면 좋겠다 지상에는 나라는 아픈 신발이 아직도 걸어가고 있으면 좋겠다 오래된 실패의 힘으로 그 힘으로 천양희 시집 / 새벽에 생각하다 이재호 갤러리 문학이야기/명시 2022.04.23
무너진 사람탑 / 천 양 희 작품 : 이 명 일 무너진 사람탑 / 천 양 희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잠언은 망언이 된 지 오래다 오래된 것과 낡은 것은 다르고 변화와 변질이 다르다는 말 믿지 않은 지 오래다 과정보다는 결과를 도전보다는 도약을 꿈꾼 지 오래다 허명도 명성이라 생각하고 치욕도 욕이라 생각 않은 지 오래다 젊은이는 열정이 없고 늙은이는 변화가 없는 지 오래다 예술과 상술이 혼돈하고 시업과 사업을 구별하지 못 한 지 오래다 고난이 기회를 주지 않고 위기가 기회가 되지 않은 지 오래다 그러니 꿈도 꾸지 마라 자존심 하나로 버틸 생각 죄 안 짓고 살 생각 그러니 너는 조금씩 잎을 오므리듯 입을 다물라 시집 : 새벽에 생각하다 문학이야기/명시 2021.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