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미자 물의 온도 / 장혜령 바람이 지난 후의 겨울 숲은 고요하다 수의를 입은 눈보라 물가에는 종려나무 어두운 잎사귀들 가지마다 죽음이 손금처럼 얽혀 있는 한 사랑이 지나간 다음의 세계처럼 이 고요 속에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초록이 초록을 풍경이 색채를 간밤 온 비로 얼음이 물소리를 오래 앓고 빛 드는 쪽으로 엎드려 잠들어 있을 때 이른 아침 맑아진 이마를 짚어보고 떠나는 한 사람 종소리처럼 빛이 번져가고 본 적 없는 이를 사랑하듯이 깨어나 물은 흐르기 시작한다 장혜령시집 / 발이 없는 나의 여인은 노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