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 수 경

푸른 언덕 2021. 1. 5. 18:18

​ Tiage Bandeira / Unsplash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 허 수 경

나는 내 섬에서 아주 오래 살았다

그대들은 이제 그대들의 섬으로 들어간다

나의 고독이란 그대들이 없어서 생긴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여서 나의 고독이다

그대들의 고독 역시 그러하다

고독은 나쁜 것도 좋은 것도 아니지만

기필코 우리를 죽이는 살인자인 것은 사실이다

그 섬으로 들어갈 때 그대들의 챙긴 물건은

그 섬으로 들어갈 때 내가 챙긴 물건과 비슷하지만

단 하나 다른 것쯤은 있을 것이다

내가 챙긴 사랑의 편지가

그대들이 챙긴 사랑의 편지와 빛이 다른 것

그 차이가 누구는 빛의 차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은 세기의 차이다

태양과 그림자의 차이다

이것이 고독이다

섬에서 그대들은 나에게 아무 기별도 넣지 않을 것이며

섬에서 나도 역시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속에는 눈물이 없다

다만 짤막한 안부 인사만, 이렇고

잘 지내시길,

이 세계의 모든 섬에서

고독과 악수를 청한 잊혀갈 손이여

별의 창백한 빛이여

*사람들은 각자의 섬에서 고독과 함께 점점

사라져가는 존재들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시인은 이 시를 통해서 이 세계의 모든 섬들에게

짧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시집 :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문학과 지성사,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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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수경 시인 약력

출생 :1964년 경남 진주

학력 : 뮌스터 대학교 대학원 <고대근동고고학>

등단 : 1987년 실천문학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수상 : 2016년 제6회 전숙희 문학상

시집: 혼자가는 먼집

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2018년 10월 3일 독일에서 암투병 중 타계

향년 54세

*독일에서 박사 학위 받고 독일인 교수와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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