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반 고흐(Vincent Van Gogh, 1853-1890)는 프랑스 남부에 위치한 아를(Arles)에서 화가 공동체를 실현시키고자 했다. 반 고흐가 꿈 꾸는 화가 공동체란 여러 명의 화가가 한 공간에 모여 작품 토론도 하고 작품활동도 하는 것이었다. 반 고흐는 아를에 도착한 뒤 한동안 호텔에 머물다 라마르틴 광장(Place Lamartine)에 있는 집을 빌렸다. ‘노란집(Yellow House)’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반 고흐는 다른 화가들과 함께 생활하길 원했다.
반 고흐는 동료화가들 중 특히 평소에 존경하던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1848-1903)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는 5월부터 무려 5달 동안 고갱에게 편지를 썼고, 그의 동생 테오도르 반 고흐(Theodore Van Gogh, 1857-1890) 또한 고갱을 아를로 부르기 위해 노력했다. 긴 설득 끝에 고갱은 아를의 ‘노란 집’에 올 것을 약속했고 반 고흐는 그와 함께 생활할 보금자리를 정성스럽게 꾸미기 시작했다. 평소 해바라기 꽃을 유달리 좋아했던 반 고흐는 그들의 화실을 노란색의 해바라기로 가득 채우고 싶었다. 그러나 화실 전체를 해바라기로 장식하고자 했던 첫 계획과는 달리 반 고흐는 연작 중 잘 된 작품 두 점만을 고갱이 쓸 방에 걸어두었다. 1888년 완성된 12송이의 해바라기가 그려진 는 8월에 고흐가 그린 연작 중 하나이다.
작품과 표현기법
반 고흐는 선보다는 색채를 중시한 몽티셀리(Adolphe Joseph Thomas Monticelli, 1824-1886)를 들라크루아(Ferdinand Victor Eugène Delacroix, 1798-1863)의 정신을 계승한 색채의 대가로 생각했다. 반 고흐는 특히 몽티셀리의 정물화에 영향을 받았다. 그의 정물화는 강렬한 색채와 두꺼운 붓 터치로 인한 질감표현이 특징이다. 반 고흐는 몽티셀리의 화풍을 수용해 화병에 꽂힌 꽃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 그림에서 우리는 화병에 꽂혀있는 12송이의 해바라기를 볼 수 있다. 반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해바라기는 빨리 시들어버리기 때문에 나는 매일 아침 일찍부터 황혼이 올 무렵까지 해바라기를 그린다’라 적고 있다. 그래서일까? 그림 속 해바라기는 제각각 다른 모습이다. 어떤 해바라기는 활짝 피어있으나 또 다른 해바라기는 바닥을 향한 채 시들어가고 있다. 상상의 세계가 아닌 실제 보이는 것을 재빠르게 그려낼 때 포착 가능한 시간의 흐름을 이 작품에서 느낄 수 있다.
반 고흐는 고갱과 함께 머물 집을 “파란색과 노란색의 심포니” 구도를 가진 장식적인 해바라기들로 꾸미고 싶었다. 반 고흐는 평소 색채 효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를 작품에 적용하고자 했다. 보색대비에 의한 색채효과를 선호한 반 고흐는 희미한 말라카이트 그린부터 로열 블루까지 다양한 푸른색을 배경으로 따뜻한 노란색의 해바라기를 그리고자 했다.
해바라기의 노란색은 반 고흐가 개인적으로 좋아한 색이기도 하다. 베르나르(Émile Bernard, 1868 -1941)는 태양의 색깔을 닮은 해바라기의 노란 빛을 “반 고흐가 회화에서뿐만 아니라 마음 속에서도 꿈꿔왔던 빛”이라 말했다. 란 작품을 살펴보면, 한 화면에 노란색의 해바라기와 대비를 이루는 옅은 녹색을 배경을 배치함으로써 그가 원했던 장식적인 효과를 얻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반 고흐 특유의 임파스토(impasto: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하여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이르는 말)기법은 화병의 꽃들을 실제 꽃들처럼 생생한 질감을 부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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