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미술이야기/명화감상

불평등한 결혼 / 바실리푸키레프

푸른 언덕 2020. 8. 10. 07:21

 

 

"행복한 결혼생활에서 중요한 건

서로 얼마나 잘 맞는가 보다

다른 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가이다"

라고 톨스토이는 말했다.

그렇게 서로에게서 부족한 것을 채워가는 것이

올바른 결혼생활이다.

누구도 처음부터 모든 걸 갖추고 결혼 생활을

시작할 수는 없다.

특히 물질을 채우면 사랑도, 행복도

가득할 거라 착각하며

서로의 조건 맞추기에 급급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살다 보면

알게 된다.

부부간의 사랑이 아니 다른 목적으로

결혼을 하면 결국 그 다른 무엇이 발목을 잡는다.

 

19세기 러시아 또한 돈과 권력을 물물교환하며

결혼을 완성시키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싸움터에 나갈 때에는 한 번 기도하라,

바다에 나갈 때는 두 번 기도하라,

그리고 결혼을 할 때는 세 번 기도하라"

라고 하는 오래된 러시아 속담처럼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 하는 것이 결혼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진실의 눈을 가리고 현실적인 것만 찾는

러시아 세태들을 그림들이 꼬집는다.

그렇게 화폭 속에서라도

진실을 깨달으라고 말한다.

 

(불평등한 결혼), 1862년,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캔버스 유채, 173×136.5cm

트레차코프 미술관, 모스크바

 

칠십 살을 넘어 보이는 노인과 손녀뻘 되어 보이는

여린 소녀가 백 년을 함께 살자고 가약을 맺는다.

얼굴에 주름이 자글자글한 늙은 남자가 금방 핀

한 떨기 꽃 같은 예쁜 여자 옆에 서서

결혼의 촛불을 밝힌다.

 

백옥같이 빛나는 하얀 드레스에 우아함과

순수함까지 차려 입은 청초한 여자는,

"행복, 순결, 반드시 행복해 집니다"라는

꽃말을 지닌 은방울꽃을 가슴에 달고,

머리에는 아직 피지도 않은 은방울꽃

화환을 예쁘게 쓰고,

축 늘어진 힘없는 손을 어렵게 내밀어

결혼반지를 끼려 한다.

밤새 울어 퉁퉁 부은 눈은 초점을 잃고 바닥을

헤맨다. 이미 포기한 마음이야 붙들어 맬 수 있지만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나 보다. 애써

참으려는 그녀의 울음이 눈 주의로 붉게 일어나고

앙다문 양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신랑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늙은 하객 4인방은

늘그막에 횡재한 친구가 심히 못마땅하다.

배가 아파 견딜 수가 없다. 늙은이들의 심통이 화면

가득 메운다.

그들의 뒤틀린 시선이 그림 전체를 건조하게

만들고 얼굴에 진 주름만큼이나 겹겹이 한숨짓게 한다.

그런 그들을 그림 한쪽에서 팔짱을 낀 채

우울하게 바라보는 이가 있다. 은방울꽃의 어린 신부와

나란히 서면 딱 어울릴법한 턱시도의 젊은 남자는

푸키레스 자신이란다.

빛은 갚지 못하는 농노의 어린 딸을 선뜻 자신의

노리개로 취하는 말도 안 되는 불합리를

재력으로 포장하는 현실을 작가 자신이

비통한 얼굴로 바라본다.

그림 한켠에 야멸차게 자리 잡은 19세기 중엽

러시아의 참담한 현실을 고발한다.

조용히 호통치는 것이다.

 

바실리 푸키레프(1832-1890)

모스크바 회화 조각 건축학교에서 공부하였다.

사실주의 화법인, 러시아 대표 풍속화가이다.

차코란에게 사사했으며, 주요 작품으로 (화가의 화실)

1865, (지참금 목록) 1873,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