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청춘의 기습 / 이병율

푸른 언덕 2020. 10. 26. 19:15

빅토르 바스네초프 <러시아 민속화의 대가>

청춘의 기습 / 이병율

그런 적 있을 것입니다
버스에서 누군가 귤 하나를 막 깠을 때
이내 사방에 가득 채워지고 마는

누군가에게라도 벅찬 아침은 있을 것입니다
열자마자 쏟아져서 마치 바닥에 부어놓은 것처럼
마음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어서 버릴 수 없습니다

무언가를 잃었다면
주머니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계산하는 밤은 고역이에요
인생의 심줄은 몇몇의 추운 새벽으로 단단해집니다

넘어야겠다는 마음은 있습니까
저절로 익어 떨어뜨려야겠다는 질문이 하나쯤은 있습니까

돌아볼 것이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부리로 쪼아서 거침없이 하늘에 내던진 새가
어쩌면 전생에 자신이었습니다

누구나 미래를 빌릴 수는 없지만
과거를 갚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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