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환절기 / 조은영

푸른 언덕 2023. 8. 13. 16:20

그림 / 이종석

 

환절기 / 조은영

잠들지 못한 사람들이 수화기를 쥐고 있다

너는 물이 많은 사주를 가졌구나

발이 땅에 닿지 않아 뿌리째 연결음에 매달린 사람들

생활의 자전 속에 자꾸 넘어지는 마음

밤이 등을 돌려 울고 있는 달을 안고 있다

주먹을 쥐고 울어도 손아귀는 힘이 없어

마르지 않는 바닥에서 미끄러지는 나날

축축한 손의 질기로 흙을 빚는다

눈물을 담을 수 있는 잔만큼

손끝으로 넓이와 깊이를 만든다

물레의 방향에 끌려가지 않도록 지탱하는 왼손

오른 손가락 끝에 힘을 모은다

물레가 돈다

원심력을 손끝으로 끌어 올린다

절정에 다다른 기물

자름실은 물레의 반대 방향으로 지나간다

질기가 만든 잔을 가마에 넣는다

손끝에 힘을 준다 원을 그리며 춤을 춰야지

방향을 바꿔 돌면 다음 계절이 다가온다

달이 밤에 품을 밀어내고 얼굴을 내민다

 

 

*2020년 <시인수첩> 신인상 당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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