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팝니다, 연락주세요 / 최금진

푸른 언덕 2023. 3. 3. 16:42

그림 / 후후

팝니다, 연락주세요 / 최금진

화장실 변기통에 앉아서

콩팥을 팝니다 전화주세요,를 보다가

나는 내 장기를 팔아 노후를 준비하듯

우리나라를 조금씩 떼어서 해외로 수출한다면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될 것이다

당겨쓴 카드빚과 텅 빈 통장을 생각하면

개인이 겪는 슬픔 따윈 아무것도 아닌

다수의 다수를 위한 두루마리화장지처럼

계속 풀려나오는

누구가의 슬픈 낙서 앞에서

나라가 있어야 개인이 있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말자

누군가 나를 좀 팔아다오

나도 그에게 가서

기꺼이 삼사만원의 현찰이 되어줄 테니

의지할 곳 하나도 없이 늙어가는 건달들아

제 손금을 들여다 보지 마라

거기엔,

낳으시고 기르신 부모님 은혜가 없다

그 손으로 태극기 앞에서 맹세할 의무가 없다

변기통의 물을 내리고

씩씩하게 지퍼를 올리고 아무리 다짐을 해도

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으로 뭔가를 증명해야 한다면

화장실 벽에

이렇게 쓸 수밖에 없다

제일 싼 血 팝니다,

자본주의 만세!

 

최금진 시짐 : 새들의 역사 <창비>

 

 

'문학이야기 > 명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선화 / 윌리엄 워즈워스  (27) 2023.03.05
봄의 서곡 / 정해란  (27) 2023.03.04
나는 속였다 / 헤르만 헤세  (29) 2023.03.02
산낙지를 위하여 / 정호승  (36) 2023.03.01
슬픔이 택배로 왔다 / 정호승  (28) 2023.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