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나무 도마 / 신기섭

푸른 언덕 2022. 11. 29. 12:59

 

그림 / 김선기

 

 

 

 

나무 도마 / 신기섭

 

 

 

고깃덩어리의 피를 빨아먹으면 和色이 돌았다

 

너의 낯짝 싱싱한 야채의 숨결도 스미던 몸

 

그때마다 칼날에 탁탁 피와 숨결은 절단 났다

 

식육점 앞, 아무것도 걸친 것 없이 버려진 맨몸

 

넓적다리 뼈다귀처럼 개들에게 물어뜯기는

 

아직도 상처받을 수 있는 쓸모 있는 몸, 그러나

 

몸 깊은 곳 상처의 냄새마저 이제 너를 떠난다

 

그것은 너의 세월, 혹은 영혼, 기억들; 토막 난

 

죽은 몸들에게 짓눌려 피거품을 물던 너는

 

안 죽을 만큼의 상처가 고통스러웠다

 

간혹 매운 몸들이 으깨어지고 비릿한 심장의

 

파닥거림이 너의 몸으로 전해져도 눈물 흘릴

 

구멍 하나 없었다 상처 많은 너의 몸

 

딱딱하게 막혔다 꼭 무엇에 굶주린 듯

 

너의 몸 가장 자리가 자꾸 움푹 패여 갔다

 

그래서 예리한 칼날이 무력해진 것이다

 

쉽게 토막 나고 다져지던 고깃덩이들이

 

한번에 절단되지 않았던 것이다

 

너의 몸 그 움푹 패인 상처 때문에

 

칼날도 날이 부러지는 상처를 맛봤다

 

분노한 칼날은 칼끝으로 너의 그곳을 찍었겠지만

 

그곳은 상처들이 서로 엮이고 잇닿아

 

견고한 하나의 무늬를 이룩한 곳

 

세월의 때가 묻은 손바닥같이 상처에 태연한 곳

 

혹은 어떤 상처도 받지 않는 무덤 속 같은

 

너의 몸, 어느덧 냄새가 다 빠져나갔나 보다

 

개들은 밤의 골목으로 기어 들어가고

 

꼬리 내리듯 식육점 셔터가 내려지고 있었다

 

 

 

* 2005 한국일보 신춘문예

* 79년 경북 문경 출생

* 2004 서울 예대 문창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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