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지향
홀로 죽기 / 문정희
골목길을 걷다 그만 흙탕물에 빠졌다
어차피 산뜻하게 건너기는 틀렸다
한참을 허우적이다
아예 첨벙첨범 온몸에 진흙을 묻히었다
문득 생이 환한 들판이로다
진흙 없이는 꽃도 없으니
한번 뒹구는 일 가상하도다
분명한 것은 탄탄대로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것이다
이제 목표는
홀로 서기가 아니다
홀로 죽기!
입에 꺼내 발음하고 나니
이상한 힘이 몰려온다
굴욕과 인내로 모은 훈장과 졸업장들
살 속에 남은 사랑의 흉터들
이제는 아니오 아니오 아니오
새벽닭이 울건 말건 모두 버리노니
진흙 냄새 사방에 향기로운
털끝마다 햇살이 물결친다
문정희 시집 / 나는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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