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핑고 / 황정현(2021,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푸른 언덕 2021. 11. 28. 19:41

그림 / 알렉산드로 예고로프

 



핑고 / 황정현
(2021, 경인일보 신춘문예 시)


극지의 순록은 우아한 뿔을 가졌다
거친 발굽으로 수만 년을 걸어왔다

죽은 자식을 통도에 던지며 발길을 돌려야 했고
비틀걸음으로 얼음산을 넘어야 했고

살점을 떼어 어린 자식의 배를 불려야 했고
뿔을 세워 침입자에 맞서야 했고

온몸을 쏟아 무리를 지켰다
죽어서도 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치열한 싸움에서
늘 이기고 돌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당신은 무덤을 등에지고 돌아왔다
무덤은 살고 당신은 죽었다

무덤 속에서 얼음이 자라고 있다
얼음은 흙을 밀어 올려 산이 될 것이다

얼음의 계절이 오면 순록은
바늘잎나무숲으로 순례를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당신의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