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가을 폭포 / 정 호 승 ​

푸른 언덕 2021. 10. 18. 19:11

그림 / 조 남 현

 

가을 폭포 / 정 호 승

 

술을 마셨으면 이제 잔을 놓고 가을폭포로 가라

가을폭포는 낙엽이 질 때마다 점점 더 깊은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

외로운 산새의 주검 곁에 누워 한 점 첫눈이 되기를 기다리나니

술이 취했으면 이제 잔을 놓고 일어나 가을폭포로 가라

우리의 가슴속으로 흐르던 맑은 물 소리는 어느덧 끊어지고

삿대질을 하며 서로의 인생을 욕하는 소리만 어지럽게 흘러가

마음이 가난한 물고기 한 마리

폭포의 물줄기를 박차고 튀어나와 푸른 하늘 위에 퍼덕이나니

술이 취했으면 이제 잔을 놓고 가을폭포로 가서

몸을 던져라

곧은 폭포의 물줄기도 가늘게 굽었다 휘어진다

휘어져 굽은 폭포가 더 아름다운 밤

초승달도 가을폭포에 걸리었다

 

시집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