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육체 2

​길 위에서 중얼 거리다 / 기 형 도

그림 / 조 지 원 ​ ​ ​ 길 위에서 중얼 거리다 / 기 형 도 ​ ​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들이여 ​ ​ ​ 기형도 시집 / 입 속의..

나무와 새장 / 문 태 준

그림 : 이 옥 자 ​ ​ 나무와 새장 / 문 태 준 ​ 내가 소상히 아는 한 나무는 터번을 머리에 둘러 감고 있네 날마다 성전을 펼쳐든다네 옮겨 심어졌다고 내게 고백한 적이 있었네 그도 나도 다시 태어나기 위해 기도문을 외고 왼다네 턱관절은 견고하나 육식을 앓는 그 그에게는 새장이 하나 매달려 있네 내게도 하나 매달려 있네, 새장에는 차진 반죽의 아내, 피리 소리처럼 떨고 있는 딸 새장은 더 크고 둥그런 새장 속에 있네 그는 새장의 빗장을 풀고 청공으로 나아가네 한바퀴, 또 한바퀴, 연속해서 돌며 육체를 잠그지 않는 무용수처럼 ​ ​ 시집 : 우리들의 마지막 얼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