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김현주 연못 위에 쓰다 / 안도현 당신을 병상에 버리고 당신은 유리창 넘어로 저를 버리고 저는 밤마다 아무도 읽지 않을 이야기를 썼죠 마당 가에 연못을 들였고요 당신이 꽃의 모가지를 따서 한 홉쯤 말려서 소포로 보내주신다면 꽂잎을 물 위에 뿌려놓고 꽃잎이 물속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바라보려 했죠 당신은 오래 죽은 척 가만히 누워 있었죠 발톱을 깎아 달라는 청을 들어주지 못했어요 연못가에 앉아 제 발등을 바라보는 동안 풀이 시들고 바람이 사나워지고 골짜기 안쪽에 눈이 몰려왔어요 당신의 장롱과 당신의 옷을 분리하고 당신의 부엌에서 당신의 수저를 떼어내고 면사무소가서 이름을 지웠지요 저는 이제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되었어요 문법을 잊고 마음껏 미끄러질 수 있게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