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민 경 윤 비애에 대하여 / 나 호 열 늙은 베틀이 구석진 골방에 앉아 있다 앞뜰에는 봄꽃이 분분한데 뒤란엔 가을빛 그림자만 야위어간다 몸에 얹혀졌던 수많은 실들 뼈마디에 스며들던 한숨이 만들어내던 수만 필의 옷감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수동태의 긴 문장이다 간이역에 서서 무심히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의 꼬리를 뒤따라가던 눈빛이 마침표로 찍힌다 삐거덕거리며 삭제되는 문장의 어디쯤에서 황톳길 읍내로 가던 검정고무신 끌리는 소리가 저무는 귀뚜라미 울음을 닮았다 살아온 날만큼의 적막의 깊이를 날숨으로 뱉어낼 때마다 베틀은 자신이 섬겼던 주인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나호열시집 /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