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비애에 대하여 / 나 호 열

푸른 언덕 2021. 6. 22. 18:45

그림 / 유 영 국 <원주 뮤지엄 산>

 

비애에 대하여 / 나 호 열

 

 

 

늙은 베틀이 구석진 골방에 앉아 있다

앞뜰에는 봄꽃이 분분한데

뒤란엔 가을빛 그림자만 야위어간다

몸에 얹혀졌던 수많은 실들

뻐마디에 스며들던 한숨이 만들어내던

수만 필의 옷감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수동태의 긴 문장이다

간이역에 서서 무심히 스쳐지나가는

급행열차의 꼬리를 뒤따라가던 눈빛이 마침표로 찍힌다

삐거덕거리머 삭제되는 문장의 어디쯤에서

황토길 읍내로 가던 검정고무신 끌리는 소리가

저무는 귀뚜라미 울음을 닮았다

 

살아온 날 만큼의 적막의 깊이를

날숨으로 뱉어낼 때마다

베틀은 자신이 섬겼던 주인이 그리워지는 것이다

 

엄불레라 창간호 (2021)

 

<원주 뮤지엄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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