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病) / 기형도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기형도 시인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정외과졸업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안개>
89년 3월 타계
시집 <입속의 검은 잎> ,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