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뼈에 새긴 그 이름

푸른 언덕 2020. 7. 8. 14:11

뼈에 새긴 그 이름 / 이 원 규

그대를 보낸 뒤
내내 노심초사하였다

행여
이승의 마지막일지도 몰라
그저 바람이 머리칼을 스치기만 해도
갈비뼈가 어긋나고

마른 갈잎이 흔들리며
그 잎으로 그대의 이름을 썼다

청둥오리 떼를 불러다
섬진강 산 그림자에 어리는
그 이름을 지우고
벽소령 달빛으로
다시 전서체의 그 이름을 썼다

별자리들마저
그대의 이름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바꿔 앉는 밤

화엄경을 보아도
잘 모르는 활자들 속에
슬쩍
그 이름을 끼워서 읽고
폭설의 실상사 앞 들녘을 걸으면

발자국,
발자국들이 모여
복숭아뼈에 새긴 그 이름을
그리고 있었다

길이라면 어차피
아니 갈 수 없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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