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문학이야기/명시

밤, 바람 속으로 / 나 희 덕

푸른 언덕 2021. 12. 20. 19:36

작품 / 김 광 호

 

밤, 바람 속으로 / 나 희 덕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별들이 멀리서만 반짝이던 밤

저는 눈을 뜬 듯 감은 듯 꿈도 깨지 않고

등에 업혀 이 세상 건너갔지요.

차마 눈에 넣을 수 없어서

꼭꼭 씹어 삼킬 수도 없어서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논둑길 뱀딸기 밑에 자라던

어린 바람도 우릴 따라왔지요

어떤 행위로도 다할 수 없는 마음의 표현

업어준다는 것

내 생의 무게를 누군가 견디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긴 들판 건너게 했지요.

그만 두 손 내리고 싶은

세상마저 내리고 싶은 밤에도

저를 남아 있게 했지요.

저는 자라 또 누구에게 업혔던가요.

바람이 저를 업었지요.

업다가 자주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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