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물류창고이수명 2

물류 창고 / 이수명

그림 / 임영수 물류 창고 / 이수명 ​ ​ 우리는 물류 창고에서 만났지 창고에서 일하는 사람처럼 차려 입고 느리고 섞이지 않는 말들을 하느라 호흡을 다 써 버렸지 ​ 물건들은 널리 알려졌지 판매는 끊임없이 증가했지 창고 안에서 우리들은 어떤 물건들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갔다가 거기서 다시 다른 방향으로 갔다가 돌아오곤 했지 갔던 곳을 또 가기도 했어 ​ 무얼 끌어내리려는 건 아니었어 그냥 담당자처럼 걸어 다녔지 바지 주머니엔 볼펜과 폰이 꽂혀 있었고 전화를 받느라 구석에 서 있곤 했는데 그런 땐 꼼짝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지 ​ 물건의 전개는 여러모로 훌륭했는데 물건은 많은 종류가 있고 집합되어 있고 물건 찾는 방법을 몰라 닥치는 대로 물건에 손대는 우리의 전진도 훌륭하고..

물류창고 / 이수명

그림 / 채정원 물류창고 / 이수명 그는 창고로 간다고 했다. 창고에 재고가 좀 남았나 살펴본다고 했다. 쓸모없는 일이다.기록상으로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는 살펴보다가 어두운 창고에서 문턱에 걸려 넘어지거나 튀어나온 선반에 머리가 부딪히거나 할 것이다. 이윽고 자신처럼 두리번거리는 사람을 발견하고 같이 두리번거리며 창고를 돌아다닐 것이다 영등포에서 온 김미진 어린이는 방송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이 나오면 방송실로 가보겠지 그는 흘러다니는 전파를 이리저리 따라다닐 거라고 했다. 갈라진 콘크리트 바닥 틈으로 전파가 퍼져나가고 그는 끊어졌다 이어졌다하는 전파에서 무얼 찾아내야 하는지 잊어버린 채 목장갑을 끼고 왔다갔다 할 것이다. 자신이 왜 그렇게 흰 목장갑을 끼고 있는지 몰라 장갑 낀 손을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