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최금진시인 2

끝없는 길 (지렁이) / 최금진

그림 / 장정화 ​ ​ ​ ​ 끝없는 길 (지렁이) / 최금진​ ​ ​ 끔틀거리는 의지로 어둠속 터널을 뚫는다 덧난 상처가 다시 가려워지는 쪽이 길이라고 믿으며 흙을 씹는다 눈뜨지 않아도 몸을 거쳐가는 시간 이대로 멈추면 여긴 딱 맞는 관짝인데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나올까 무너진 길의 처음을 다시 만나기로 할까 잘린 손목의 신경 같은 본능만 남아 벌겋게 어둠을 쥐었다, 놓는다 돌아보면 캄캄하게 막장 무너져내리는 소리 앞도 뒤도 없고 후퇴도 전진도 없다 누군가 파묻은 탯줄처럼 삭은 노끈 한 조각이 되어 다 동여매지 못한 어느 끝에 제 몸을 이어보려는 듯 지렁이가 간다, 꿈틀꿈틀 어둠에 血이 돈다 ​ ​ ​ ​ ​ 최금진 시집 / 새들의 역사 ​ ​ ​ ​ ​ ​ ​ ​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그림 / 이율 누가 고양이 입속의 시를 꺼내 올까 / 최금진 혓바닥으로 붉은 장미를 피워 물고 조심조심 담장을 걷는 언어의 고양이 깨진 유리병들이 거꾸로 박힌 채 날 선 혓바닥을 내미는 담장에서 줄장미는 시뻘건 문장을 완성한다 경사진 지붕을 타 넘으면 세상이 금세 빗면을 따라 무너져 내릴 것 같아도 사람은 잔인하고 간사한 영물 만약 저들이 쳐놓은 포회틀에 걸리기라도 한다면 구름으로 변장하여 빠져나올 것이다 인생무상보다 더 쉽고 허무한 비유는 없으니 이 어둠을 넘어가면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달덩이가 있다 거기에 몸에 꼭 맞는 둥지도 있다 인간에게 최초로 달을 선사한 건 고양이 비유가 아니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테니 흰 접시 위에 싱싱한 물고기 한 마리 올려놓는다 언어는 지느러미를 펄럭이며 하늘로 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