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개미 2

날품 / 김 명 희

그림 / 정 은 하 ​ ​ 날품 / 김 명 희 ​ 이른 새벽 한 무리의 인부들이 봉고차에 실린다 이내 어느 현장으로 옮겨진 그들 어둠을 깨고 부수고 그 위에 아침을 쌓는다 건물이 한 뼘씩 오를 때마다 그들의 몸은 개미들처럼 작아진다 안전화는 전혀 안전하지 못한 공중만 떠들고 가벼운 지폐 몇 장 삼겹살과 소주로 선술집 상을 채우는 고마운 저녁 밤이 이슥해지자 한둘만 남기고 봉고차는 어둠저쪽 어디론가 사라지고 무심히 흘려 넣은 거나한 꿈들은 졸음 한켠 후미진 담벼락에서 음습한 절망으로 젖어간다 희망의 괘도를 벗어난 안전화만이 누군가의 넋두리를 따라서 귀가하는 밤 이젠, 욱신거리는 잠의 날품을 팔아야 할 시간이다 ​ ​ ​ ​ 김명희 시집 / 화석이 된 날들 ​ ​ ​ ​

길 위에서 / 나 희 덕

그림 : 정 진 경 ​ ​ 길 위에서 / 나 희 덕 ​ ​ 길을 잃고 나서야 나는 누군가의 길을 잃게 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개미를 기억해내었다. 눅눅한 벽지 위 개미의 길을 무심코 손가락으로 문질러버린 일이 있다. ​ ​ 돌아오던 개미는 지워진 길 앞에서 두리번거리다가 전혀 엉뚱한 길로 접어들었다. 제 길 위에 놓아주려 했지만 그럴수록 개미는 발버둥치며 달아나버렸다. ​ ​ 길을 잃고 나서야 생각한다. 사람들에게도 누군가 지나간 자리에 남는 냄새 같은 게 있다는 것을, 얼마나 많은 인연들의 길과 냄새를 흐려놓았던지, 나의 발길은 아직도 길 위에서 서성거리고 있다. ​ ​ ​ 나희덕 시집 :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 ​ ​ ​ ​ ​ ​ ​ 인천 강화군 교동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