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 이은실 방랑의 엘레지 / 쉼보르스카 모든 것이 내 것이지만, 내 소유는 아니다. 바라보고 있는 동안은 내 것이지만, 기억으로 소유할 순 없다. 가까스로 기억을 떠올린들 불확실할 뿐. 머리를 잘못 맞춘 여신의 조각상처럼. 사모코프에 내리는 비는 멈출 줄 모른다. 파리의 정경은 루브르에서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까지 가물가물 희미하게 사라져간다. 생마르탱의 가로수 길, 그곳의 계단은 갈수록 페이드아웃. 내 기억 속에서 '다리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고작 다리 한 개와 반쯤 남은 또 다른 다리의 영상. 가여운 웁살라에는 무너진 대성당의 잔해. 소피아에는 얼굴없이 몸통만 남은 가여운 무희가 있다 눈동자 없는 그의 얼굴 따로, 동공 없는 그의 눈동자 따로, 고양이의 동공도 따로. 새롭게 재건된 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