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목련 / 도 종 환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떠나버린 육신을 끌어안고
뒤척이던 밤이면
머리맡에서 툭툭 꽃잎이
지는 소리가 들린다
백목련이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꽃과 나무가
서서히 결별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나무 옆에 서 있는 일은 힘겨웠다
스스로 참혹해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오래 고통스러웠다
목련에게 미안하다 / 복 효 근
황사 먼지 뒤집어 쓰고
목련이 핀다
안질이 두렵지 않은지
기관지염이 두렵지 않은지
목련이 피어서 봄이 왔다
어디엔가 늘 대신 매 맞아 아픈 이가 있다
목련에게 미안하다
목련 이력서 / 이 해 리
개봉 되자 버려진 이력서처럼
피자마자 봄이 간다.
올해도 마지막처럼
가지 끝에 부풀어
뽀얀 주먹 두 개를 푸른 하늘에
내밀고 있다.
스무 해 서른 해
온힘 다해 밀어 넣어도
한번도 꼼꼼히 읽히지 않은
목련꽃의 이력이 저 주먹 안에 있겠다.
아무 배경 없이도 순결한 심성만 있다면
이 세상 화사한 꿈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
어느 처녀 가장
4월 하늘이
흰불꽃 회오리 그 주먹 안에
허공 두 줌을 쥐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