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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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 도 종 환

푸른 언덕 2021. 4. 6. 19:55

자목련 / 도 종 환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고통스러웠다

마음이 떠나버린 육신을 끌어안고

뒤척이던 밤이면

머리맡에서 툭툭 꽃잎이

지는 소리가 들린다

백목련이 지고 난 뒤

자목련 피는 뜰에서

다시 자목련 지는 날을

생각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꽃과 나무가

서서히 결별하는 시간을 지켜보며

나무 옆에 서 있는 일은 힘겨웠다

스스로 참혹해지는

자신을 지켜보는 일은

너를 만나서 행복했고

너를 만나서 오래 고통스러웠다

 

목련에게 미안하다 / 복 효 근

황사 먼지 뒤집어 쓰고

목련이 핀다

안질이 두렵지 않은지

기관지염이 두렵지 않은지

목련이 피어서 봄이 왔다

어디엔가 늘 대신 매 맞아 아픈 이가 있다

목련에게 미안하다

 

목련 이력서 / 이 해 리

개봉 되자 버려진 이력서처럼

피자마자 봄이 간다.

올해도 마지막처럼

가지 끝에 부풀어

뽀얀 주먹 두 개를 푸른 하늘에

내밀고 있다.

스무 해 서른 해

온힘 다해 밀어 넣어도

한번도 꼼꼼히 읽히지 않은

목련꽃의 이력이 저 주먹 안에 있겠다.

아무 배경 없이도 순결한 심성만 있다면

이 세상 화사한 꿈에 닿을 수 있다고 믿는

어느 처녀 가장

4월 하늘이

흰불꽃 회오리 그 주먹 안에

허공 두 줌을 쥐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