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 기 형 도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 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 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기형도 시인 : 1960년 출생,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안개"로 등단
1989년 29세 타계
(입속의 검은 잎) 유고 시집
*기형도 시인의 시는 회색빛에 가깝다.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시는 죽음에 관한 언어들이 많다.
그의 죽음을 일찍 예견하고 있었을까?
이시는 특별히 은유적인 표현이 잘 되어있다.
마지막 문장에 고드름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