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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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 기 형 도

푸른 언덕 2020. 11. 25. 21:48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 기 형 도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내 어찌 모를 것인가.

내 생 뒤에도 남아 있을 망가진 꿈들,

환멸의 구름들, 그 불안한 발자국 소리에 괴로워할

나의 죽음들.

 

오오, 모순이여, 오르기 위하여 떨어지는 그대.

어느 영혼이기에 이 밤 새이도록 끝없는 기다림의

직립으로 매달린 꿈의 뼈가 되어 있는가.

곧이어 몹쓸 어둠이 걷히면 떠날 것이냐.

한때 너를 이루었던 검고 투명한 물의 날개로

떠오르려는가. 나 또한 얼마만큼 오래 냉각된 꿈속을

뒤척여야 진실로 즐거운 액체가 되어 내 생을 적실

것인가. 공중에는 빛나는 달의 귀 하나 걸려 고요히

세상을 엿듣고 있다. 오오, 네 어찌 죽음을 비웃을

것이냐 삶을 버려둘 것이냐, 너 사나운 영혼이여!

고드름이여.

 

 

기형도 시인 : 1960년 출생, 19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안개"로 등단

1989년 29세 타계

(입속의 검은 잎) 유고 시집

 

*기형도 시인의 시는 회색빛에 가깝다.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시는 죽음에 관한 언어들이 많다.

그의 죽음을 일찍 예견하고 있었을까?

이시는 특별히 은유적인 표현이 잘 되어있다.

마지막 문장에 고드름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