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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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가을이 / 최 승 자

푸른 언덕 2020. 11. 2. 18:29

 

 

 

개 같은 가을이 / 최승자

 

개 같은 가을이 쳐들어온다.

매독 같은 가을.

그리고 죽음은, 황혼 그 마비된

한쪽 다리에 찾아온다.

 

모든 사물이 습기를 잃고

모든 길들의 경계선이 문드러진다.

레코드에 담긴 옛 가수의 목소리가 시들고

여보세요 죽선이 아니니 죽선이지 죽선아

전화선이 허공에서 수신인을 잃고

한 번 떠나간 애인들은 꿈에도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그리고 괴어 있는 기억의 폐수가

한없이 말 오줌 냄새를 풍기는 세월의 봉놋방에서

나는 부시시 죽었다 깨어난 목소리로 묻는다.

어디만큼 왔나 어디까지 가야

강물은 바다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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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놋방: 대문 가까이 있어서 나그네들이

한데 모여 자는 주막집의 가장 큰방

 

♡최승자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개는 황량하게

버림받은 쓸쓸한 들이다.

내면의 깊은 폐부를 드러내는 그녀는 왜 그리도

고독했을까? 지상으로 초대된 우리는 기쁨과

고통과 절망을 겪으며 살아가는 운명이다.

 

 

*최승자 시인 (1952년, 충남)

-고려대 독어독문과 졸업

-1979년 <문학과 지성> 등단

*파격적인 언어와 감성으로 한 시대를 앞서 나간

여성 시인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2010)

물 위에 씌어진 (2011)

빈 배처럼 텅 비어(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