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호박 5

호박(琥珀)속의 모기 / 권 영 하(2012 농민 신문 시조 당선작)

출처 / NAVER ​ ​ ​ 호박(琥珀)속의 모기 / 권 영 하 (2012 농민 신문 시조 당선작) ​ ​ ​ 호박(琥珀) 속에 날아든 지질시대 모기 한놈 목숨은 굳어졌고 비명도 갇혀 있다 박제된 시간에 갇혀 강울음은 딱딱하다 멈추는 게 비행보다 힘드는 모양이다 접지 못한 양날개, 부릅뜬 절규의 눈 온몸에 깁스한 관절 마디마디 욱신댄다 은밀히 펌프질로 흡협할 때 달콤했다 빨알간 식욕과 힘, 그대로 몸에 박고 담황색 심연 속에서 몇 만년을 날았을까 전시관에 불을 끄면 허기가 생각나서 호박 속의 모기는 이륙할지 모르겠다 살문향(殺蚊香) 피어오는 도심을 공격하러 ​ ​ ​ ​ *1965년 경북 영주 출생 *문경시 점촌 중학교 교사 ​ ​ ​

어떤 出土 / 나 희 덕

그림 / 김 소 영 ​ ​ ​ 어떤 出土 / 나 희 덕 ​ ​ ​ 고추밭을 걷어내다가 그늘에서 늙은 호박 하나를 발견했다 뜻밖의 수확을 들어올리는데 흙 속에 처박힌 달디단 그녀의 젖을 온갖 벌레들이 오글오글 빨고 있는 게 아닌가 소신공양을 위해 타닥타닥 타고 있는 불꽃 같기도 했다 그 은밀한 의식을 훔쳐보다가 나는 말라가는 고춧대를 덮어주고 돌아왔다 ​ 가을갈이를 하려고 밭에 다시 가보니 호박은 온데간데 없다 불꽃도 흙 속에 잦아든 지 오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녀는 젖을 다 비우고 잘 마른 종잇장처럼 땅에 엎드려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의 죽음을 덮고 있는 관뚜껑을 나는 조심스럽게 들어올렸다 ​ 한 웅큼 남아 있는 둥근 사리들! ​ ​ ​ ​ 나희덕 시집 / 사라진 손바닥 ​ ​ ​ ​ ​ ​ ​

의자 / 이정록

그림 / 김 연 제 ​ ​ ​ ​​ 의자 / 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에 똬리도 받쳐야겠다 그것들도 식군데 의자를 내줘야지 싸우지 말고 살아라 결혼하고 애 낳고 사는 게 별거냐 그늘 좋고 풍경 좋은데 의자 몇 개 내놓는 거여 ​ ​ * 이정록 시집 / 의자 ​ ​ ​ ​ ​ ​

호박에 관하여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호박에 관하여 / 이 효 ​ 벽 같은 영감탱이라고 밤낮 소리 질렀는데 그래도 못난 마누라 배 나왔다고 등 받쳐주는 건 당신뿐이구려 ​ 내 손바닥 거칠다고 손 한 번 잡아주지 않더니 간밤에 슬며시 까칠한 잎 담장 위에 올려놓은 건 당신뿐이구려 ​ 이웃집 늙은 호박 누렇게 익어 장터에 팔려 나갔는데 시퍼렇게 익다만 내게 속이 조금 덜 차면 어떠냐고 한 번 맺은 인연 끈지 말자며 투박한 말 건넨 건 당신뿐이구려 ​ 둥근 호박 메달은 긴 목 바람에 끊어져 나갈까 봐 몸에 돌을 쌓고 흙을 발라서 바람 막아주는 건 당신뿐이구려 ​ 영감, 조금만 참아주시오 내 몸뚱이 누렇게 익으면 목줄 끊어져도 좋소 당신을 위해서라면 호박죽이 될망정 뜨거운 가마솥에 들어가리라 ​ 늙어서 다시 한번 펄펄 끓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