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키스 3

이별 / 괴테

그림 / 이신애 이별 / 괴테 이별의 말은 입이 아닌 눈으로 하리라. 견디기 어려운 이 쓰라림! 언제나 굳건히 살아왔건만. 달콤한 사랑의 징표도 헤어질 때는 슬픔이 되는 것을. 너의 키스는 차가워지고, 너의 손목은 힘이 없으니. 슬쩍 훔친 키스가 그때는 얼마나 황홀했던지! 이른 봄에 꺾었던 오랑캐꽃이 우리들의 기쁨이었던 것처럼 너를 위해 다시는 꽃도 장미도 꺾지 않으리. 프란치스카여, 지금은 봄이라지만 나는 쌀쌀한 가을 같구나. 괴태 시집 (송영택 옮김)

그 사랑에 대해 쓴다 / 유 하

그림 / 김 정 수 ​ ​ ​ 그 사랑에 대해 쓴다 / 유 하 ​ ​ ​ 아름다운 시를 보면 그걸 닮은 삶 하나 낳고 싶었다 노을을 바라보며 노을빛 열매를 낳은 능금나무처럼 ​ 한 여자의 미소가 나를 스쳤을 때 난 그녀를 닮은 사랑을 낳고 싶었다 점화된 성냥불빛 같았던 시절들, 뒤돌아보면 그 사랑을 손으로 빚고 싶다는 욕망이 얼마나 많은 열정의 몸짓들을 낳았던 걸까 그녀를 기다리던 교정의 꽃들과 꽃의 떨림과 떨림의 기차와 그 기차의 희망, 내가 앉았던 벤치의 햇살과 그 햇살의 짧은 키스 밤이면 그리움으로 날아가던 내 혀 속의 푸른 새 그리고 죽음조차도 놀랍지 않았던 나날들 ​ 그 사랑을 빚고 싶은 욕망이 나를 떠나자, 내 눈 속에 살던 그 모든 풍경들도 사라졌다 바람이 노을의 시간을 거두어 가면 능금나무..

두 마음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두 마음 / 이 효 ​ 외출하고 돌아왔다. 붉은색 원피스도 모자도 벗는다 모자를 의자 모서리에 걸었다 양파 껍질을 벗기면 눈물이 난다 ​ 인간의 높고자 하는 욕망 틀어논 수도꼭지 같다 하이힐만큼이나 꽃이 달린 모자만큼이나 내 안에 꽈리를 틀고 춤추는 너 ​ 나를 쳐다보는 수많은 신선들 밤에 빛났던 불빛들 새벽 자동차 바퀴에 깔린 시간들 모자 속에 숨었던 새가 둥지에서 작은 깃털이 되는 순간이다 ​ 내일 아침 다시 모자를 쓰고 나갈까 아니, 다시는 모자를 쓰지 말자 두 마음이 키스를 한다 ​ 바벨탑을 오르는 모자들 발자국의 웅성거림 내일도 욕망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