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8

종을 만드는 마음으로 / 이어령

그림 / 진옥 ​ ​ ​ 종을 만드는 마음으로 / 이어령 ​ ​ ​ 대장장이가 범종을 만들듯이 그렇게 글을 써라. 온갖 잡스러운 쇠붙이를 모아서 불로 녹인다. 무디고 녹슨 쇳조각들이 형체를 잃고 용해되지 않으면 대장장이는 망치질을 못한다. ​ 걸러서는 두드리고 두드리고는 다시 녹인다. 그러다가 쇳조각은 종으로 바뀌어 맑은 목청으로 운다. 망치로 두드릴 때의 쇳소리가 아니다. ​ 사냥꾼이 한 마리의 꿩을 잡듯이 그렇게 글을 써라. 표적을 노리는 사냥꾼의 총은 시각과 청각과 촉각과 그리고 후각의 모든 감각의 연장(延長)이고 연장(道具)이다. ​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숨는 것을 향해 쏘아야 한다. 또 돌진해 오는 것들을 쏘아야 한다. 표적에서 빗나가는 사냥꾼은 총대를 내리지 않고 또다른 숲을 ..

깊은 숲 / 강 윤 후

그림 / 강 은 영 ​ ​ ​ 깊은 숲 / 강 윤 후 ​ ​ 나무들이 울창한 생각 끝에 어두워진다 김 서린 거울을 닦듯 나는 손으로 나뭇가지를 걷으며 나아간다 깊이 들어갈수록 숲은 등을 내보이며 ​ 멀어지기만 한다 저 너머에 내가 길을 잃고서야 닿을 수 있는 집이라도 한 채 숨어 있다는 말인가 문 열면 바다로 통하는 집을 저 숲은 품에 안고 성큼 성큼 앞서 가는 것인가 마른 잎이 힘 다한 바람을 슬며시 ​ 내려놓는다 길 잃은 마음이 숲에 들어 더 깊은 숲을 본다 ​ ​ ​ ​ *출생 : 1962, 서울 *학력 : 고려대학교 대학원 *경력 : 우송공업대학 (문예창작과조교수) ​ ​ ​ ​

길 위에서의 생각 / 류 시 화

그림 / 송 춘 희 ​ ​ 길 위에서의 생각 / 류 시 화 ​​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 ​ 류시화 시집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 ​

집사람 / 홍해리

그림 / 최 종 태 ​ ​ ​ 집사람 / 홍해리 ​ 집은 그런 것이었다 아픔이라고 또는 슬픔이라고 무슨 말을 할까 속으로나 삭이고 삭이면서 겉으로 슬쩍 금이나 하나 그었을 것이다 곡절이란 말이 다 품고 있겠는가 즐겁고 기쁘다고 춤을 추었겠는가 슬프고 외로웠던 마음이 창문을 흐리고 허허롭던 바깥마음은 또 한 번 벽으로 굳었을 것이다 아내는 한 채의 집이었다 한평생 나를 품어준 집이었다 ​ ​ 홍해리 시선집 / 마음이 지워지다 ​ ​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그림 / 김 정 수 ​ ​ ​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천양희 ​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산 넘어버렸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강 건너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면서 나는 그만 그 집까지 갔지요.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하면서 나는 그걸 위해 다른 것 다 버렸지요. 그땐 슬픔도 힘이 되었지요. 그 시간은 저 혼자 가버렸지요.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었지요. ​ ​ ​ 시집 /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 ​ ​ ​ ​

달빛 문장 / 김 정 임

그림/ 이 선 희 ​ ​ ​ 달빛 문장 / 김 정 임 ​ ​ ​ 운주리 목장에 달이 뜨자 쇠똥구리 한 마리 길 떠나기 시작하네 제 몸보다 수십 배 무거운 쇠똥을 빚어서 온몸으로 굴려서 가네 ​ 작은 몸이 힘에 겨워 쇠똥에 매달려 가는 것 같네 문득 멈추어 달빛을 골똘히 들여다보네 달빛 아래서만 제 길을 찾는 두 눈이 반짝이네 마치 달빛 문장을 읽는 것 같이 보이네 ​ 무슨 구절일까 밑줄 파랗게 그어가며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가네 갑옷 속의 붉은 심장이 팔딱팔딱 뛰네 어느 날 내게 보여준 네 마음에 밑줄 그으며 몇 번씩 읽어내려 가던 눈부신 순간이 생각났네 ​ 맑은 바람 한 줄기가 쇠똥구리 몸 식혀주네 태어나고 죽어야 할 집 한 채 밀고 가네 드넓은 벌판에 아름다운 집 한 채 밀고 가네 그날 네 마음이 내..

나비에게 / 이 해 인

​ 나비에게 / 이 해 인 ​ 너의 집은 어디니? ​ ​ 오늘은 어디에 앉고 싶니? ​ ​ 살아가는게 너는 즐겁니? 죽는 게 두렵진 않니? ​ ​ 사랑과 이별 인생과 자유 그리고 사람들에 대하여 ​ ​ 나는 늘 물어볼 게 많은데 ​ ​ 언제 한번 대답해주겠니? ​ ​ 너무 바삐 달려가지만 말고 지금은 잠시 나하고 놀자 ​ ​ 갈곳이 멀더라도 잠시 쉬어가렴 사랑하는 나비야 ​ ​ ​ 나비에게 / 이 해 인 ​ 너의 집은 어디니? ​ 오늘은 어디에 앉고 싶니? ​ 살아가는게 너는 즐겁니? 죽는 게 두렵진 않니? ​ 사랑과 이별 인생과 자유 그리고 사람들에 대하여 ​ 나는 늘 물어볼 게 많은데 ​ 언제 한번 대답해주겠니? ​ 너무 바삐 달려가지만 말고 지금은 잠시 나하고 놀자 ​ 갈곳이 멀더라도 잠시 쉬어가렴..

아버지의 마음 / 김 현 승

이 미 정 ​ ​ 아버지의 마음 / 김 현 승 ​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 어린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