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정호승 3

혀 / 정 호 승

​ ​ 혀 / 정 호 승 ​ ​ 어미개가 갓난 새끼의 몸을 핥는다 앞발을 들어 마르지 않도록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며 온몸 구석구석 혀로 핥는다 병약하게 태어나 젖도 먹지 못하고 태어난 지 이틀만에 죽은 줄을 모르고 잠도 자지 않고 핥고 또 핥는다 나는 아이들과 죽은 새끼를 손수건에 고이 싸서 손바닥만한 언 땅에 묻어주었으나 어미개는 길게 뽑은 혀를 거두지 않고 밤새도록 허공을 핥고 또 핥더니 이튿날 아침 혀가 다 닳아 보이지 않았다 ​ ​ ​ 시집 : 내가 사랑하는 사람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그림 : 오순환 ​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 만남에 대하여 진정으로 기도해온 사람과 결혼하라 봄날 들녘에 나가 쑥과 냉이를 캐어본 추억이 있는 사람과 결혼하라 된장을 풀어 쑥국을 끓이고 스스로 기뻐할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일주일 야근을 하느라 미처 채 깎지 못한 손톱을 다정스레 깎아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콧등에 땀을 흘리며 고추장에 보리밥을 맛있게 비벼먹을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어미를 그리워하는 어린 강아지의 똥을 더러워하지 않고 치울 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고단한 별들이 잠시 쉬어가도록 가슴의 단추를 열어 주는 사람과 결혼하라 가끔 전깃불을 끄고 촛불 아래서 한 권의 시집..

눈부처 / 정호승

그림 : 이 승 희 ​ ​ 눈부처 / 정 호 승 ​ 내 그대 그리운 눈부처 되리 그대 눈동자 푸른 하늘가 잎새들 지고 산새들 잠든 그대 눈동자 들길 밖으로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그대는 이 세상 그 누구의 곁에도 있지 못하고 오늘도 마음의 길을 걸으며 슬퍼하노니 그대 눈동자 어두운 골목 바람이 불고 저녁별 뜰 때 내 그대 일평생 눈부처 되리 ​ 시집 :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