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자유 8

회전문 앞에서 / 안 재 홍

그림 / 정 진 경 ​ ​ ​ ​ 회전문 앞에서 / 안 재 홍 ​ ​ ​ 꽃잎 하나 하늘거리며 떨어져 내린다 저 가뿐한 몸짓 회전문 앞에서 본다 ​ 나가고자 하나 다시 돌아온 제자리가 진정한 자유인지 모른다 내 안에 안녕이 있음을 떠나본 자들은 알리라 ​ 안에서 나가려 하고 밖에서 들어오려 애쓴다 ​ 안팎의 경계가 꽃그늘처럼 아슴아슴하다 ​ ​ ​ 안재홍 시집 / 무게에 대하여 ​ ​ ​ ​

텅 빈 자유 (치매행 致梅行) / 홍 해 리

그림 / 강 은 영 ​ ​ ​ 텅 빈 자유 (치매행 致梅行) ​ 홍해리 ​ ​ 아내는 신문을 읽을 줄 모릅니다 텔레비전을 켜고 끄는 것도 못합니다 전화를 걸 줄도 모릅니다 컴퓨터는 더군다나 관심도 없습니다 돈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돈이 어디에 필요하겠습니까 은행이 무엇인지 모르니 은행에 갈 일도 없습니다 통장도 신용카드도 쓸 줄 모르니 버려야 합니다 버스카드도 필요가 없습니다 문명의 이기가 정말 이기이긴 한 것인가 요즘은 헷갈리기만 합니다 이름을 몰라도 칼은 칼이고 사과는 사과입니다 자유라는 말은 몰라도 아내는 자유인입니다 지는 해가 절름절름 넘어가고 있습니다.​ ​ ​ ​ 홍해리 시집 / 치매행 致梅行 ​ ​ ​

한 잎의 여자 / 오 규 원

그림 / 권 신 아 ​ ​ ​ 한 잎의 여자 / 오 규 원 ​ ​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한 잎같이 쬐그만 여자, 그 한 잎의 여자를 사랑했네. 물푸레나무 그 한 잎의 솜털, 그 한 잎의 맑음, 그 한 잎의 영혼, 그 한 잎의 눈, 그리고 바람이 불면 보일 듯 보일 듯한 그 한 잎의 순결과 자유를 사랑했네. ​ 정말로 나는 한 여자를 사랑했네. 여자만을 가진 여자, 여자 아닌 것은 아무것도 안 가진 여자, 여자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여자, 눈물 같은 여자, 슬픔 같은 여자, 병신 같은 여자, 시집 같은 여자, 그러나 영원히 가질 수 없는 여자, 그래서 불행한 여자. ​ 그러나 영원히 나 혼자 가지는 여자, 물푸레나무 그림자 같은 슬픈 여자. ​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

길 위에서의 생각 / 류 시 화

그림 / 송 춘 희 ​ ​ 길 위에서의 생각 / 류 시 화 ​​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 ​ 류시화 시집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 ​ ​

참말로 사랑은 / 나 태 주

그림 / 권선희 ​ ​ ​ 참말로 사랑은 / 나 태 주 ​ ​ ​ 참말로 사랑은 그에게 자유를 주는 일입니다 나를 사랑할 수 있는 자유와 나를 미워할 수 있는 자유를 한꺼번에 주는 일입니다 참말로의 사랑은 역시 그에게 자유를 주는 일입니다 나에게 머물 수 있는 자유와 나를 떠날 수 있는 자유를 동시에 따지지 않고 주는 일입니다 바라만 보다가 반쯤만 눈을 뜨고 바라만 보다가. ​ ​ ​ 나태주 시집 / 가장 예쁜 생각을 너에게 주고 싶다 ​ ​ ​ ​

미얀마의 봄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 ​ 미얀마의 봄 / 이 효 ​ 목련이 피기도 전에 떨어진다 수북이 떨어진 꽃잎 밟지 마라 누군가 말한다 꽃잎이 떨어진다고 뭐가 달라지나 ​ 붉은 핏방울 땅을 흥건히 적신다 자유를 향한 목소리 총알을 뚫는다 치켜올린 세 개의 손가락 끝에 파란 싹이 솟아오른다 ​ 밤새도록 울부짖던 어머니의 기도 붉은 등불로 뜨겁게 타오른다 오늘 밤에도 미얀마의 봄을 위해 타오르다 떨어지는 젊은 영혼들 ​ 잔인한 4월의 봄은 붉은 목련에 총알을 박는다 그래도 봄은 다시 온다. ​ ​ ​ 미얀마의 소식이 뉴스를 통해서 전해진다. 젊은 청년들을 비롯해서 어린아이들까지 목숨을 잃고 있다. 미얀마 국민들은 군부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매일 벌이고 있지만 군경은 선량한 국민들을 폭도로 규정하고 무력으로 민가에 ..

조연 꼬리표

조연 꼬리표 / 이 효 ​ 파란 하늘이 내려온다 구름이 땅 같고 땅이 구름 같구나 무대 위 서서히 춤추는 무희 속은 울고 있다 외다리 무희 아픔 골 깊다 ​ 무대 앞 우뚝 솟은 산 누런 잎에 녹아내린 세월 전쟁터에서 승리한 적장은 꽃다발 던진다 피 묻은 겉옷 흰옷 갈아입는다 ​ 내 안에 포로는 속삭인다 새벽이 오기 전에 떠나자 양철 같은 둥근 모자 쓰고 깃털을 단다 적지를 탈출하는 풀 피리 소리 무음으로 떤다 ​ 파란 하늘에서 양발로 자유롭게 춤추는 그날까지 조연 꼬리표 하늘에 펄럭인다 춤추는 무희의 눈물 한 방울 가을 산 활활 태운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