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영혼 15

숲, 나무에서 배우다 / 김 석 흥

그림 : 신 은 봉 ​ ​ ​ 숲, 나무에서 배우다 / 김 석 흥 ​ ​ ​ 숲에 사는 나무는 박애주의자다 생김새가 다르다고 다투기는 하나 미워하지 않는다 키가 좀 작다고 허리가 굽었다고 업신여기지 않는다 언제나 주어진 자리에 서 있을 뿐 결코 남의 자리를 욕심내지 않는다 숲에 들어서면 가슴이 환해지는 이유이다 ​ 숲을 지키는 나무들은 거룩한 성자다 산새들이 몸통 구석구석을 쪼아 대고 도려내도 아픈 기색 보이지 않는다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잠을 설쳐도 끝내 쓴소리 한 번 내지 않고 폭설에 여린 팔 하나쯤 부러져도 오르지 끝 끝모르는 사랑으로 품어 안는다 숲에 들어서면 영혼이 맑아지는 이유다 ​ ​ ​ 시집 / 천지연 폭포 (김석흥 시인) ​ ​ 그림 : 김 연 희 ​ ​ ​ ​ ​ ​ ​ ​

겨울 나무 / 장 석 주

​ 겨울 나무 / 장 석 주 ​ 잠시 들었다 가는 길입니다 외롭고 지친 발걸음 멈추고 바라보는 빈 벌판 빨리 지는 겨울 저녁 해걸음 속에 말없이 서있는 흠없는 혼 하나 당분간 폐업합니다 이 들끓는 영혼을 잎사귀를 떼어 버릴 때 마음도 떼어 버리고 문패도 내렸습니다 그림자 하나 길게 끄을고 깡마른 체구로 서 있습니다. ​ ​ * 장석주 시인 약력 소설가, 시인 1954년 충남 논산 출생 1975년 월간문학 "심야" 등단 2010 질마재 문학상 (1회) ​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 기 형 도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 기 형 도 어느 영혼이기에 아직도 가지 않고 문밖에서 서성이고 있느냐. 네 얼마나 세상을 축복하였길래 밤새 그 외로운 천형을 견디며 매달려 있느냐. 푸른 간유리 같은 대기 속에서 지친 별들 서둘러 제 빛을 끌어모으고 고단한 달도 야윈 낫의 형상으로 공중 빈 밭에 힘없이 걸려 있다. 아느냐, 내 일찍이 나를 떠나보냈던 꿈의 짐들로하여 모든 응시들을 힘겨워하고 높고 험한 언덕들을 피해 삶을 지나다녔더니, 놀라워라. 가장 무서운 방향을 택하여 제 스스로 힘을 겨누는 그대, 기쁨을 숨긴 공포여, 단단한 확신의 즙액이여. 보아라, 쉬운 믿음은 얼마나 평안한 산책과도 같은 것이냐 어차피 우리 모두 허물어지면 그뿐, 건너야 할 세상 모두 가라앉으면 비로소 온갖 근심들 사라질 것을. 그러나 ..

카테고리 없음 2020.11.25

병 (病) / 기형도

병(病) / 기형도 내 얼굴이 한 폭 낯선 풍경화로 보이기 시작한 이후, 나는 주어를 잃고 헤매이는 가지 잘린 늙은 나무가 되었다. 가끔씩 숨이 턱턱 막히는 어둠에 체해 반 토막 영혼을 뒤틀어 눈을 뜨면 잔인하게 죽어간 붉은 세월이 곱게 접혀 있는 단단한 몸통 위에, 사람아, 사람아 단풍든다. 아아, 노랗게 단풍든다. ​ *​기형도 시인 1960년 경기도 연평에서 출생 연세대학교 정외과졸업 8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 89년 3월 타계 시집 ,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

카테고리 없음 2020.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