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아내에관한시 3

식탁 둘레 / 감태준

그림 / 서귀자 ​ ​ ​ ​ ​ 식탁 둘레 / 감태준 ​ ​ ​ 식탁 둘레에 모여 있는 의자들을 본다. 다들 조용하다. 두 딸은 시집가고 아내는 늦은 아들을 기다리다 방에 들고, 나는 슬그머니 아내의 의자에 가서 앉아 본다. ​ 아들 옆 이 자리에서 아내는 밥 먹는 식구들을 둘러보았으리. 아침상에 나오지 않는 두 딸의 의자를 보고 아픈 젖을 한 번 더 떼기로 하였으리. ​ 그런 날이 또 올 것이다. 그때에도 아내는 또 한 젖을 떼며 의자 구석구석을 닦고 문질러 윤을 내고 있으리. ​ 불을 끄면 식탁 둘레가 더 적막할 것 같다. 불을 끈다, 아내의 얼굴이 꺼지지 않는다. ​ ​ ​ ​ ​ 집 ​ ​ ​ ​​ ​

아내 / 이경렬

그림 / 민경수 ​ ​ ​ ​ 아내 / 이경렬​ ​ ​ ​ ​ 곤하게 잠든 밤에도 꿈속에서조차 못 이기는 아픔 신음 소리에 몸을 뒤척인다 움직이는 종합병원이 된 지 오래된 몸 대장을 잘라낸 남편의 세끼 맞추기에 쉴 틈이 없다 "여보 설거지는 내가 하지" 집사람 물리고 그릇을 닦는데 누가 뒤에서 한마디 하는 것 같았다 "이놈아 진작 좀 그렇게 하지" 암 수술 받은 어느 남자가 그랬단다 천사와 함께 살면서도 이제껏 몰랐다고 그 사람도 나같이 멍청했나 보다 방에서 집사람 신음 소리가 또 들린다 저 소리가 이제야 아프게 들이다니 누군가 또 한 마디 한다 "이 사람아 지금도 늦지 않았네" ​ ​ ​ ​ ​ ​ 시집 / 인사동 시인들(2023) ​ ​ ​ ​ ​ ​ ​

꼭지켜야 할 일 ᆞ1 / 임승훈

그림 / 서문일초 꼭지켜야 할 일 ᆞ1 / 임승훈 십오 년 만에 장롱 서랍장 밑에서 찾아낸 아내의 얼굴 자국 먼지 먹은 원고지와 눈물 먹은 일기장 속에 그녀의 혼불이 살아 있었다 깨알 손글씨에 민낯을 드러낸 아내의 얼굴 긴 병마에 멍든 가슴 일기장에 남아 있고 두 아이의 사연이 눈가에 멍울져 있었다 밀물과 썰물에 밀려갔다 밀려오는 그녀의 숨겨진 그림자 일기 읽어보고 또 읽어 본다 나는 갯벌에 나와 물을 찾아 떠도는 물새 상처 난 외눈으로 아내의 눈물을 먹고 있는 눈물 새 무정하고 무심한 나비 꽃 당신 그래도 당신이 남기고 간 꼭 지켜야 할 일을 또 다시 보고 상처난 세월을 다시 꿰매고 있다 임승훈 시집 / 꼭, 지켜야 할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