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 / 김제현 그림 /유영국 그물 / 김제현 늙은 어부 혼자 앉아 그물을 깁고 있다. 매양 끌어 올리는 것은 파도 소리며 달빛뿐이지만 내일의 투망을 위해 그물코를 깁고 있다. 알 수 없는 수심(水深)을 자맥질해 온 어부의 젖은 생애가 가을볕에 타고 있다. 자갈밭 널린 그물에 흰 구름이 걸린다. 김제현 시집 / 무상의 별빛 문학이야기/명시 2022.10.02
거미줄 / 이동호 그림 / 김경희 거미줄 / 이동호 누가 급하게 뛰어든 것처럼 내 방 벽 모서리에 동그랗게 파문 번진다 물속에 잠긴 것처럼 익숙한 것들이 낯설게 느껴진다 바깥의 누군가가 이 눅눅한 곳으로 나를 통째로 물수제비 뜬 것이 분명하다 곧 죽을 것처럼 호흡이 가빠왔다 삶의 밑바닥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으로 가라앉으면서 나는 나조차도 낯설게 느껴졌다 내가 잠든 사이 창을 통해 들어온 거미 덕분에, 내게도 수심이 생긴 것이다 이동호 시집 / 총잡이 문학이야기/명시 2022.05.28
바다와 나비 / 김 기 림 그림 / 김 미 영 바다와 나비 / 김 기 림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알려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김기림 시선집 / 바다와 나비 (작가와 비평) 문학이야기/명시 202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