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쇠붙이 2

종을 만드는 마음으로 / 이어령

그림 / 진옥 ​ ​ ​ 종을 만드는 마음으로 / 이어령 ​ ​ ​ 대장장이가 범종을 만들듯이 그렇게 글을 써라. 온갖 잡스러운 쇠붙이를 모아서 불로 녹인다. 무디고 녹슨 쇳조각들이 형체를 잃고 용해되지 않으면 대장장이는 망치질을 못한다. ​ 걸러서는 두드리고 두드리고는 다시 녹인다. 그러다가 쇳조각은 종으로 바뀌어 맑은 목청으로 운다. 망치로 두드릴 때의 쇳소리가 아니다. ​ 사냥꾼이 한 마리의 꿩을 잡듯이 그렇게 글을 써라. 표적을 노리는 사냥꾼의 총은 시각과 청각과 촉각과 그리고 후각의 모든 감각의 연장(延長)이고 연장(道具)이다. ​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움직이고 숨는 것을 향해 쏘아야 한다. 또 돌진해 오는 것들을 쏘아야 한다. 표적에서 빗나가는 사냥꾼은 총대를 내리지 않고 또다른 숲을 ..

놀란 강 / 공 광 규

그림 : 김 경 희 ​ ​ 놀란 강 / 공 광 규 ​ 강물은 몸에 하늘과 구름과 산과 초목을 탁본하는데 모래밭은 몸에 물의 겸손을 지문으로 남기는데 새들은 지문 위에 발자국 낙관을 마구 찍어대는데 사람도 가서 발자국 낙관을 꾹꾹 찍고 돌아오는데 그래서 강은 수천 리 화선지인데 수만 리 비단인데 해와 달과 구름과 새들이 얼굴을 고치며 가는 수억 장 거울인데 갈대들이 하루 종일 시를 쓰는 수십억 장 원고지인데 그걸 어쩌겠다고? 쇠붙이와 기계 소리에 놀라서 파랗게 질린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