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안 목련 / 강 애 란 그림 : 정 금 상 담장 안 목련 / 강 애 란 지난밤 담장 아래로 내려앉은 그녀 한껏 피었다가 몇 날이나 허허롭게 웃었을까 구름 속 달빛의 손길 그녀의 귓가를 입술을 두 뺨을 쓸어내릴 때 온몸 흔드는 꽃샘바람에 휘청거리며 몇 날이나 소리 없이 울었을까 떨어지는 꽃잎들 담장 안은 한철 머물다 가는 장례식장이다 시집 : 조금 쉬어가며 웃어요 문학이야기/명시 2021.03.30
나이 든 고막 / 마종기 나이 든 고막 / 마종기 싱싱하고 팽팽한 장구나 북같이 소리가 오면 힘차게 불러주던 고막이 이제는 곳곳에 늙은 주름살만 늘어 느슨하게 풀어진 채 소리를 잘 잡지 못한다. 나이 들어 윤기도 힘도 빠진 한 겹 살, 주위에서는 귀 검사를 해보라고 하지만 그런 것 안 해도 알지, 내가 의사 아닌가. 그보다 늙은 고막이 오히려 고마운걸. 시끄러운 소리 일일이 듣지 않아도 되고 잔소리에 응답을 안 해도 되는 딴청, 언제부턴가 깊고 은은한 소리만 즐겨 듣는다. 멀리서 오는 깨끗한 울림만 골라서 간직한다. 내 끝이 잘 보이는 오늘 같은 날에는 언젠가 들어본 저 사려 깊은 음성이 유난히 크게 울리는 사랑스러운 내 귀. 문학이야기/명시 2020.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