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새벽 5

부치지 않은 편지1 / 정호승

그림 / 성기혁 부치지 않은 편지1 / 정호승 ​ 그대 죽어 별이 되지 않아도 좋다 푸른 강이 없어도 물은 흐르고 밤하늘이 없어도 별은 뜨나니 그대 죽어 별빛으로 빛나지 않아도 좋다. 언 땅에 그대 묻고 돌아오던 날 산도 강도 뒤따라와 피울음 울었으나 그대 별의 넋이 되지 않아도 좋다. 잎새에 이는 바람이 길을 멈추고 새벽 이슬에 새벽 하늘이 다 젖었다. 우리들 인생도 찬 비에 젖고 떠오르던 붉은 해도 다시 지나니 밤마다 인생을 미워하고 잠이 들었던 그대 굳이 인생을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 * 정호승시집 / 새벽편지

별들은 따뜻하다 / 정 호 승

그림 / 권신아 ​ ​ ​ 별들은 따뜻하다 / 정 호 승 ​ ​ ​ 하늘에는 눈이 있다 두려워할 것은 없다 캄캄한 겨울 눈 내린 보리밭길을 걸어가다가 새벽이 지나지 않고 밤이 올 때 내 가난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 나에게 진리의 때는 이미 늦었으나 내가 용서라고 부르던 것들은 모두 거짓이었으나 북풍이 지나간 새벽 거리를 걸으며 새벽이 지나지 않고 또 밤이 올 때 내 죽음의 하늘 위로 떠오른 별들은 따뜻하다 ​ ​ ​ ​ ​ ​ 시집 / 어느 가슴엔들 시가 꽃피지 않으랴 ​ ​ ​ ​

접시꽃 당신 / 도 종 환

그림 / 강 계 진 ​ ​ 접시꽃 당신 / 도 종 환 ​ ​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 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직 많은 날을 기다려야 하고 당신과 내가 갈아엎어야 할 저 많은 묵정밭은 그대로 남았는데 논두렁을 덮는 망촛대와 잡풀가에 넋을 놓고 한참을 앉았다 일어섭니다 마음 놓고 큰 약 한번 써보기를 주저하며 남루한 살림의 한구석을 같이 꾸려오는 동안 당신은 벌레 한 마리 함부로 죽일 줄 모르고 약한 얼굴 한 번 짖지 않으며 살려했습니다 그러나 당신과 내가 함께 받아들어야 할 남은 하루하루의 하늘은 끝없이 밀려..

저녁의 정거장 / 천 양 희

​ ​ ​ 저녁의 정거장 / 천 양 희 ​ ​ 전주에 간다는 것이 ​진주에 내렸다 ​독백을 한다는 것이 ​고백을 했다 ​너를 배반하는 건 ​바로 너다 ​너라는 정거장에 나를 부린다 그때마다 나의 대안은 ​평행선이라는 이름의 기차역 ​선로를 바꾸겠다고 ​기적을 울렸으나 ​종착역에 당도하지는 못하였다 돌아보니 ​바꿔야 할 것은 ​헛바퀴 돈 바퀴인 것 ​목적지 없는 기차표인 것 ​ ​ 저녁 무렵 ​기차를 타고 가다 ​잘못 내린 역에서 ​잘못을 탓하였다 ​ ​ 나는 내가 불편해졌다 ​ ​ ​ ​ 시집 / 새벽에 생각하다

꽃구경 가자 (자작 시)

꽃구경 가자 / 이 효 ​ 얘야 꽃이 피었구나 꽃구경 가자 ​ ​ 모두가 잠든 밤 당신 검게 그을린 폐 붉은 꽃 한 조각 펼쳐 놓고 가슴에 바느질하는 소리 딸에게 전화를 건다 ​ ​ 아버지 왜요? 새벽이잖아요 동트면 일나가야 해요 찰칵~ ​ ​ 얘야 꽃구경은 다리 힘없다 목소리가 듣고 싶구나 뚜뚜뚜~ ​ 당신은 그렇게 가셨습니다 꽃이 피면 미안했습니다 붉은 꽃이 피면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 ​ 멀리서 웃어 주시는 아버지 옷자락이 너무 얇아서 꽃무늬 가득한 가을 산자락 끌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