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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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 / 홍해리

그림 / 최 종 태 ​ ​ ​ 집사람 / 홍해리 ​ 집은 그런 것이었다 아픔이라고 또는 슬픔이라고 무슨 말을 할까 속으로나 삭이고 삭이면서 겉으로 슬쩍 금이나 하나 그었을 것이다 곡절이란 말이 다 품고 있겠는가 즐겁고 기쁘다고 춤을 추었겠는가 슬프고 외로웠던 마음이 창문을 흐리고 허허롭던 바깥마음은 또 한 번 벽으로 굳었을 것이다 아내는 한 채의 집이었다 한평생 나를 품어준 집이었다 ​ ​ 홍해리 시선집 / 마음이 지워지다 ​ ​ ​

개혁 / 권 영 하 <신춘문예 당선 시>

​ 개혁 / 권 영 하 ​ ​ 도배를 하면서 생각해보았다 언제나 그랬지만 낡은 벽은 기존의 벽에 악착같이 달라붙어 진액을 빨아 버짐으로 자랐다 벽지를 그 위에 새로 바를 수도 없었다 낡고 얼룩진 벽일수록 수리가 필요했고 장판 밑에는 곰팡이꽃이 만발발했다 합지보다 실크 벽지를 제거하는 것이 더 힘들고 시간도 많이 들었다 그렇다고 이사하거나 집을 새로 지을 수도 없었기에 낡은 벽을 살살 뜯어내고 새 벽지를 재단해 잘 붙였야 했다 습기는 말리고 울퉁불퉁한 곳에 초배지를 발랐다 못자국과 흔적은 남아있었지만 잘 고른 벽지는 벽과 천장에서 환하게 뿌리를 내렸다 온몸에 풀을 발라 애면글면 올랐기에 때 묻고 해진 곳은 꽃밭이 되었다 갈무리로 구석에 무늬를 맞추었더니 날개 다친 나비도 날아올랐다 방안이 보송보송해졌다 ​..

돌담에 햇살처럼 / 이 효

그림 : 김 정 수 돌담에 햇살처럼 / 이 효 돌담에 악보를 그리는 햇살같이 청춘들이 고요한 노래로 물든다 돌담을 타고 오르는 푸른 잎같이 오늘 하루 하늘의 주인공이 된다 서로를 끌어안은 돌담 같은 청춘들 바다에서 굴러온 돌들 강에서 굴러온 돌들 밭에서 굴러온 돌들 벽이 되어준 부모를 떠나서 스스로 벽이 된다 비가 오면 더욱 선명해지는 벽의 색깔들 가난이 푹푹 쌓여도 햇살을 기다린다 공이 벽으로 날아와도 푸른 잎으로 막는다 돌담에 햇살이 비치면 배가 항해를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