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언덕 (이효 시인 티스토리)

어두운 밀실에서 인화 되지 못한 가난함 부끄러워하지 않는 이유는 텅 빈 거실에 무명 시 한 줄 낡은 액자에 걸어 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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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바람 속으로 / 나 희 덕

작품 / 김 광 호 ​ ​ ​ ​ 밤, 바람 속으로 / 나 희 덕 ​ ​ ​ ​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별들이 멀리서만 반짝이던 밤 저는 눈을 뜬 듯 감은 듯 꿈도 깨지 않고 등에 업혀 이 세상 건너갔지요. 차마 눈에 넣을 수 없어서 꼭꼭 씹어 삼킬 수도 없어서 아버지 저를 업었지요. 논둑길 뱀딸기 밑에 자라던 어린 바람도 우릴 따라왔지요 어떤 행위로도 다할 수 없는 마음의 표현 업어준다는 것 내 생의 무게를 누군가 견디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긴 들판 건너게 했지요. 그만 두 손 내리고 싶은 세상마저 내리고 싶은 밤에도 저를 남아 있게 했지요. 저는 자라 또 누구에게 업혔던가요. 바람이 저를 업었지요. 업다가 자주 넘어져 일어나지 못했지요. ​ ​ ​ ​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 경 주

그림 / 소 순 희 ​ ​ ​ ​ 못은 밤에 조금씩 깊어진다 / 김 경 주 ​ ​ 어쩌면 벽에 박혀 있는 저 못은 아무도 모르게 조금씩 깊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 이쪽에서 보면 못은 그냥 벽에 박혀 있는 것이지만 벽 뒤 어둠의 한가운데서 보면 내가 몇 세기가 지나도 만질 수 없는 시간 속에서 못은 허공에 조용히 떠 있는 것이리라 ​ 바람이 벽에 스미면 못도 나무의 내연(內緣)을 간직한 빈 가지처럼 허공의 희미함을 흔들고 있는 것인가 ​ 내가 그것을 알아본 건 주머니 가득한 못을 내려놓고 간 어느 낡은 여관의 일이다 그리고 그 높은 여관방에서 나는 젖은 몸을 벗어두고 빨간 거미 한 마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기어나올 때까지 몸이 휘었다 ​ 못은 밤에 몰래 휜다는 것을 안다 ​ 사람은 울면서 비로소 자기가 ..

홀로 새우는 밤 / 용 혜 원

그림 : 김 정 수 홀로 새우는 밤 / 용 혜 원 홀로 새우는 밤 세상 바다에 나뭇잎새로 떠 있는 듯 아무리 뒤척여 보아도 어둠이 떠날 줄 모르고 나를 가두어 놓았다 혼자라는 고독을 느낄 나이가 되면 삶이란 느낌만으로도 눈물만으로도 어찌할 수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도 함께할 수 있는 이 있어도 홀로 잠들어야 하는 밤 시계 소리가 심장을 쪼개고 생각이 수없이 생각을 그려낸다 밤을 느낄 때 고독을 느낀다 벌써 밤이 떠날 시간이 되었는데 내 눈에 아직 잠이 매달려 있다 시집: 용혜원의 그대에게 주고 싶은 나의 시